본문: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들어가는 말씀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의 약점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성격의 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 형편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과거의 상처와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대개 자신의 강점은 드러내고 약점은 감추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고,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점을 숨기고, 때로는 없는 척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 해도 약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점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면서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바울은 자신의 약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크게 기뻐하며 자랑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했을까요?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는 성경이 명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질병이나 시력 문제, 지속적인 박해, 혹은 영적인 고통 등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어느 하나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시의 정체가 아니라 그 가시가 바울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여기서 세 번은 단순히 짧은 기도를 세 번 했다는 의미라기보다, 일정한 기간을 두고 간절하고 집중적으로 기도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약점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시를 해석하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가시가 사역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통로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약한 것들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첫째, 약점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영적 체험을 했습니다. 본문 앞부분을 보면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가 사람이 표현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특별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특별한 위험도 따릅니다. 바로 교만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 자신을 높이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자신이 이룬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셨습니다. 본문에는 “너무 자만하지 않게”라는 목적이 두 차례 반복됩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자신의 가시가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자신을 교만으로부터 지키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시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지켜 줍니다
가시는 찌르면 아픕니다. 바울은 그 가시를 “나를 쳐서”라고 표현했습니다. 가시가 가볍거나 견딜 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바울을 괴롭히고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하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가시는 바울을 약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교만으로부터 바울을 지켜 주었습니다.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것은 가속 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동차에 가속 장치만 있고 제동 장치가 없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브레이크는 자동차를 방해하는 장치가 아니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가게 하는 장치입니다.
우리의 약점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약점 때문에 원하는 만큼 빨리 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약점을 통해 우리가 잘못된 길로 달려가지 못하도록 막아 주실 수 있습니다. 약점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는 하나님의 제동 장치가 됩니다.
약점은 내가 피조물임을 깨닫게 합니다
사람은 일이 잘될 때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쉽습니다. 건강할 때는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처럼 생각하고, 사업이 잘될 때는 자신의 판단과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줄 압니다. 교회에서 귀하게 쓰임 받을 때도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의 약점이 생기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을 겪으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실패를 경험하면 자신의 판단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약점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피조물이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겸손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내가 이룬 결과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수고를 했지만 그 수고의 결과조차 자신의 공로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약점이 바울을 겸손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약점을 무조건 감추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이것이 부족합니다.”
“주님, 저는 이 문제 앞에서 두렵습니다.”
“주님, 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에게 있는 가시는 무엇입니까? 그 약점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그 약점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시고 교만으로부터 보호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약점 때문에 자신을 비하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 약점을 통해 제가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을 높이는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둘째, 약점은 나를 감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8절과 9절 전반부입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바울은 가시를 그냥 참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떠나가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고통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질병이 있으면 치료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으면 공급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관계가 깨졌다면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언제나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들으셨지만, 바울이 기대한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가시를 제거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시를 없애 주시는 대신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거절도 응답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말을 대개 원하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병이 나으면 응답이고, 사업이 잘되면 응답이며,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렇다”라고 하시는 것만 응답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때로는 “아니다”라는 응답도 있고, “기다리라”는 응답도 있습니다. 또한 “그 문제를 없애 주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감당할 은혜를 주겠다”라는 응답도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위험한 물건을 달라고 울며 요구할 때 부모는 주지 않습니다. 아이의 요구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거절합니다. 아이는 당장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더 잘 압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눈앞의 고통만 보기 때문에 “이것만 없어지면 행복할 텐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보다 그 고통을 통해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신 것은 바울을 사랑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을 끝까지 지키고 더 깊은 은혜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충분한 은혜를 깨달을 때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족하다’는 것은 간신히 버틸 만큼만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의 형편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것에 집중합니다.
“왜 나에게는 이것이 없을까?”
“왜 나는 저 사람처럼 건강하지 못할까?”
“왜 우리 가정은 저 가정 같지 못할까?”
“왜 내 기도는 아직 응답되지 않을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시가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가시를 감당할 은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남아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하다는 것을 믿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가시가 사라져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가시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감사했습니다. 환경은 그대로였지만 환경을 바라보는 믿음이 달라졌습니다.
약점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끕니다
만일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없었다면 그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약점은 바울을 주님 앞에 엎드리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평안할 때보다 어려울 때 더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든 일이 잘될 때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를 기도의 자리로 데려가는 약점은 단순히 저주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그 약점 때문에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은혜를 체험한다면 그 약점에는 영적인 유익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고통 자체가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질병과 상처와 실패 자체를 아름답게 포장하자는 말도 아닙니다. 고통은 여전히 고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까지도 사용하여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이끄실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71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 그 자체가 유익한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약점 때문에 불평만 하지 마십시오. 약점이 나를 기도하게 했다면 감사하십시오. 약점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다면 감사하십시오. 약점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충분한지 깨달았다면 감사하십시오.
“주님, 제 가시를 제거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주님의 은혜가 제게 충분하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것이 성숙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셋째, 약점은 나를 능력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9절 후반부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온전하여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본래 부족했다가 완전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분명하고 완전하게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강해야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많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며, 재능이 뛰어나야 하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사람을 통해서도 강한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라고 하셨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말했습니다. 자신은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언변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속한 집안이 므낫세 지파 가운데 가장 약하고, 자신은 집안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드온을 부르셔서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갑옷을 입은 군인이 아니라 양을 치던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골리앗을 쓰러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특별히 강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임하자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약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이유는 결과의 영광이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약점이 사라져야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봉사하겠습니다.”
“건강해지면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이웃을 돕겠습니다.”
“성격의 약점을 완전히 고친 뒤에 사람들 앞에 서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점이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야 우리를 사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때로는 약점을 가진 바로 그 상태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바울은 가시가 제거된 후에 위대한 사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가시를 지닌 채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세웠으며, 신약성경의 여러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바울의 약점은 사명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머물다’라는 표현에는 장막을 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장막처럼 덮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약점을 자랑한 것은 약점 자체를 과시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자랑한 것도 아닙니다. 약한 자신을 통해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자랑한 것입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아파 본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합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을 쉽게 정죄하지 않습니다. 자녀 문제로 눈물 흘려 본 사람은 같은 문제로 고통받는 부모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줄 수 있습니다. 질병을 경험한 사람은 병상에 있는 사람에게 단순한 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위로를 전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이유가,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를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맡겨진 상처는 다른 사람을 살리는 위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경험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되고, 나를 넘어뜨렸던 실패가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지혜가 될 수 있습니다.
깨진 그릇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틈을 통해 빛이 비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약점과 상처를 통해 그리스도의 빛과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약할 그때에 강함이라”
10절에서 바울은 결론적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이 말씀은 약한 상태 자체가 강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강해진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할 때는 자기 힘으로 일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 때는 주님의 능력을 구합니다. 내 힘으로 일하면 내 능력만큼의 결과가 나오지만, 주님의 능력으로 일하면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나는 강하다”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약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강하시다”고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약점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약점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점을 제거하실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약점을 그대로 두신 채 그 위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 약점이 사명을 포기하는 이유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누구나 가시가 있습니다. 어떤 가시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어떤 가시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고, 평생 감당해야 할 약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가시 때문에 “나는 왜 이럴까?”라고 자신을 미워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집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모든 가시를 즉시 제거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시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은혜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가시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가시는 우리를 감사하게 만듭니다.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충분한 은혜를 체험하게 합니다.
가시는 우리를 능력 있게 만듭니다. 우리가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의지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에게 머물게 됩니다.
그러므로 약점을 숨기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약점 때문에 자신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약점 자체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함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나는 약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강하십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바울의 가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바울은 가시에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가시의 제거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약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점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 안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바울과 함께 믿음으로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삶으로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결단과 적용
첫째, 나에게 있는 가시와 약점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인정합시다. 그것을 감추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갑시다.
둘째, 약점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되 하나님의 응답을 내 방식으로 제한하지 맙시다.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도 구하고, 문제가 남아 있을 때 그것을 감당할 은혜도 구합시다.
셋째, 약점을 사명을 포기하는 이유로 삼지 맙시다. 약함을 주님께 맡기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나기를 구합시다.
마무리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도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약점과 가시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 약점 때문에 낙심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의 가시를 제거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당장 제거되지 않더라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약점을 통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시며,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충분한 은혜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상처와 실패까지도 사용하셔서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하고 살리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약함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시고, 약점 때문에 사명을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