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속의 인물들

브닌나 : 한나를 격노하게하여 기도하게 만든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

Young David 2026. 8. 24. 07:53

브닌나는 누구인가?

브닌나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살던 엘가나의 아내이며, 한나와 함께 한 가정에 속한 여인입니다.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사무엘상 1:2

성경이 브닌나에 관해 직접 알려 주는 내용은 사무엘상 1장 2–7절 정도입니다. 따라서 그의 출신, 결혼 순서, 이후의 삶과 죽음에 관해서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브닌나는 엘가나의 아내였습니다.
  • 브닌나에게는 아들과 딸들이 있었습니다.
  •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 엘가나는 한나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 브닌나는 한나를 경쟁자로 여기고 반복적으로 괴롭혔습니다.

1. 브닌나는 자녀가 있었지만 남편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1장 4–5절은 엘가나가 제사를 드린 뒤 가족들에게 제물의 몫을 나누어 주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사무엘상 1:4–5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의 모든 자녀”라는 표현과 4절의 문맥을 보면 아들과 딸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출산이라는 면에서는 한나보다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엘가나가 특별히 사랑한 사람은 한나였습니다.

브닌나는 자녀라는 분명한 복을 받았지만, 남편의 애정이 한나에게 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가 없었고, 브닌나는 자녀가 있었지만 남편의 특별한 사랑에서는 한나에게 밀린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큽니다.

본문은 브닌나의 내면을 직접 설명하지 않으므로 “브닌나가 질투했다”고 단정적으로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브닌나가 한나를 “적수”로 대하고 괴롭혔다는 행동은 경쟁심과 질투가 작용했음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두 여인은 서로가 가진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 한나는 브닌나의 자녀를 보았습니다.
  • 브닌나는 한나가 받는 엘가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은혜보다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 불행해집니다. 브닌나는 여러 자녀를 얻었으면서도 그것으로 감사하지 못하고, 한나가 받는 사랑을 자신의 결핍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브닌나의 문제는 복이 없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받은 복을 감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한 데 있었습니다.


2. 브닌나는 한나를 단순한 가족이 아니라 ‘적수’로 보았습니다

사무엘상 1장 6절은 브닌나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여기에서 “적수”는 히브리어로 차라(צָרָה, ṣārâ)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같은 남편을 둔 경쟁 관계의 아내, 즉 ‘라이벌 아내’를 뜻합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법적으로 같은 남편에게 속해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한 가족이 아니라 경쟁 관계가 되었다고 보여 줍니다.

본래 한 가정 안에서는 서로의 약점을 덮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브닌나는 한나의 가장 아픈 약점을 찾아내어 공격했습니다. 그는 한나의 불임을 위로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자신이 우월함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타나는 일부다처 가정의 반복된 비극과도 연결됩니다.

  •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는 하갈이 임신한 후 사라를 멸시했습니다(창 16:4).
  • 야곱의 가정에서는 레아와 라헬이 남편의 사랑과 자녀를 놓고 경쟁했습니다(창 29:30–30:24).
  • 엘가나의 가정에서는 브닌나와 한나 사이에 자녀와 사랑을 둘러싼 갈등이 생겼습니다(삼상 1:2–7).

성경이 이런 가정들을 기록한다고 해서 일부다처제와 그 갈등을 이상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인 질서에서 벗어난 가정 구조가 어떤 경쟁과 고통을 낳았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 줍니다(창 2:24).

브닌나의 죄는 한나를 자매로 보지 않고 경쟁자로 본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3. “격분하게 했다”는 말은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괴롭힘을 뜻합니다

개역개정은 브닌나가 한나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고 번역합니다.

여기서 “격분하게 했다”는 말은 한나가 단순히 화를 내었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히브리어 동사 카아스(כעס)는 문맥에 따라 사람을 성나게 하다, 분하게 하다, 근심하게 하다, 괴롭게 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브닌나가 한나를 자극하여 한나가 분노와 수치심과 깊은 슬픔에 빠지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에는 반복을 강조하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브닌나는 우연히 한 번 실언한 것이 아니라 한나를 심하게 자극하고 괴롭히는 행동을 지속했습니다.

7절은 더욱 분명합니다.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사무엘상 1:7

“매년”과 “올라갈 때마다”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브닌나의 괴롭힘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가족이 실로의 성소에 올라갈 때마다 반복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나는 다음과 같은 상태에 빠졌습니다.

  • 울었습니다.
  •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다.
  • 마음이 슬펐습니다.
  •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 하나님 앞에서 통곡했습니다.

성경은 브닌나가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저주받았다”, “아내 자격이 없다” 등의 말을 실제로 했다고 만들어 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본문에 따르면 브닌나는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고통을 주었습니다.


4. 브닌나는 가장 거룩해야 할 날에 한나를 괴롭혔습니다

엘가나의 가족은 매년 실로에 올라가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사무엘상 1:3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힌 때는 단순한 일상생활 중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실로에 올라간 때였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족이 함께 제물을 나누어 먹는 기쁨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브닌나는 그 거룩한 자리를 경쟁과 조롱의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브닌나가 예배에 참여했지만 예배의 정신은 갖지 못했음을 보여 줍니다.

  •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면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 입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가까운 사람의 아픔을 이용했습니다.
  • 자신이 받은 자녀의 복을 감사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낮추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사야 1장과 아모스 5장에서도 하나님은 제사를 드리면서 정의와 사랑을 저버리는 예배를 책망하십니다(사 1:11–17; 암 5:21–24). 예수님께서도 예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3–24).

브닌나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가능합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가족에게 가혹할 수 있고, 교회에서는 경건해 보이지만 가까운 사람의 상처를 반복해서 건드릴 수 있습니다.

참된 예배는 예배당 안에서의 행동뿐 아니라 예배 후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5. 브닌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사무엘상 1장 5–6절은 한나의 불임에 관하여 두 번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심을 인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성경적 세계관에서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라헬이 야곱에게 자녀를 달라고 요구했을 때 야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창세기 30:2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한나가 임신하지 못했던 것이 어떤 개인적인 죄에 대한 형벌이었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불임의 원인을 한나의 죄와 연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나를 믿음의 여인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임, 질병, 고난을 곧바로 개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욥기와 요한복음 9장도 고난을 개인의 특정 죄와 기계적으로 연결하는 판단을 거부합니다.

브닌나는 한나의 고통을 보며 긍휼히 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고통을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기회로 사용했습니다.

브닌나가 자녀를 낳은 것은 브닌나가 한나보다 의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로 다른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이것이 브닌나의 심각한 영적 문제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면 감사하게 되지만,
은혜를 자신의 자격으로 착각하면 교만하게 됩니다.


6. 엘가나에게도 가정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책임이 있습니다

브닌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엘가나에게 아무 책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습니다. 한나에게 특별한 몫을 주었고 한나를 위로하려고 했습니다.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사무엘상 1:8

그러나 엘가나의 위로는 한나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더구나 본문에는 엘가나가 브닌나의 반복적인 괴롭힘을 제지하거나 가정의 갈등을 바로잡았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편애가 두 아내의 경쟁을 더욱 자극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야곱 가정에서도 야곱이 라헬을 레아보다 더 사랑한 것이 두 자매의 경쟁을 심화시켰습니다(창 29:30–35).

다만 성경이 엘가나의 동기와 책임 범위를 명시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으므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가정 안의 괴롭힘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위로의 말뿐 아니라 불의를 제지하고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7. 브닌나는 한나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한나를 기도의 자리로 몰아갔습니다

브닌나의 행동이 선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악을 선으로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브닌나의 악한 행동조차 한나의 믿음을 깊게 하는 계기로 사용하셨습니다.

한나는 브닌나와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브닌나의 자녀를 미워하거나 저주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남편에게 보복을 요구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사무엘상 1:10

브닌나는 한나를 분노와 절망에 가두려 했지만, 한나는 그 아픔을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 브닌나는 한나의 상처를 건드렸습니다.
  • 한나는 그 상처를 하나님께 보여 드렸습니다.
  • 브닌나는 한나를 울게 했습니다.
  • 한나는 그 눈물을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 브닌나는 자신의 자녀를 자랑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사무엘을 맡기셨습니다.

사무엘의 출생은 단지 한나 개인의 명예 회복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로 세워졌고,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정 시대를 여는 핵심 인물이 되었습니다(삼상 7:15–17; 10:1; 16:13).

브닌나는 한나의 현재만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미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8. 브닌나는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성경은 사무엘상 1장 7절 이후 브닌나의 말이나 행동을 다시 기록하지 않습니다. 브닌나가 회개했는지, 한나와 화해했는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 브닌나의 자녀들이 모두 죽었다.
  • 브닌나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임이 되었다.
  • 브닌나가 한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 브닌나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사무엘상 2장 5절에서 한나가 노래합니다.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이 구절을 브닌나와 직접 연결하여 브닌나의 자녀들이 죽었다고 해석하는 전승이 있지만, 본문 자체는 브닌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한나가 실제로 일곱 명을 낳았다는 뜻으로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사무엘상 2장 21절에 따르면 한나는 사무엘 외에 세 아들과 두 딸, 즉 모두 여섯 자녀를 둡니다.

따라서 2장 5절의 “일곱”은 완전함과 충만함을 나타내는 시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구절만으로 브닌나의 자녀들이 죽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브닌나의 결말보다 한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에 초점을 둡니다. 어느 순간부터 브닌나는 이야기에서 사라지고, 하나님과 한나와 사무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브닌나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

1. 받은 복을 비교의 무기로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 자녀, 재산, 학력, 직분, 재능은 모두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받은 복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판단하거나 낮추어서는 안 됩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고린도전서 4:7

2. 다른 사람의 약점을 반복해서 건드리는 것은 폭력입니다

브닌나는 한나의 가장 아픈 부분을 알면서도 “매년”, “올라갈 때마다” 그것을 자극했습니다. 말로 하는 괴롭힘도 사람의 식욕과 일상을 무너뜨릴 만큼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3. 예배와 삶이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실로에 올라가 제사를 드리면서 한나를 괴롭힌 브닌나처럼, 예배에 참석하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이웃을 향한 긍휼로 나타나야 합니다.

4. 고통받는 사람을 하나님의 심판 대상으로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나의 불임은 그의 죄 때문이라고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고난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죄가 아니라 위로와 동행입니다.

5. 브닌나를 미워하는 데서 우리의 생각을 끝내서는 안 됩니다

브닌나는 단순히 이야기 속의 악역만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브닌나의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질투할 때
  • 내가 받은 복을 자신의 자격으로 착각할 때
  • 상대방의 약점을 알고 반복해서 건드릴 때
  • 예배드리면서 가족에게 상처를 줄 때
  • 고난당하는 사람을 쉽게 판단할 때

그러므로 이 본문은 “내 주변의 브닌나가 누구인가?”만 묻지 않습니다.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브닌나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까지 나아갈 때 한나와 브닌나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신앙을 비추는 말씀이 됩니다.

핵심 정리

브닌나는 자녀라는 복을 받았지만 감사보다 비교를 선택했고, 한나를 가족이 아니라 경쟁자로 보았으며, 그의 가장 아픈 상처를 반복해서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브닌나에게 대응하는 대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브닌나는 한나의 상처를 건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상처에서 기도를 일으키셨습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울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을 통해 사무엘을 준비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