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열왕기상 4:20–28
서론
우리의 삶에는 끊임없이 불안이 찾아옵니다. 건강에 대한 불안, 자녀에 대한 불안, 경제적인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다.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음속에서 미리 경험하게 만듭니다. 문제가 하나인데도 생각 속에서는 열 가지, 백 가지 문제로 확대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문제를 바르게 보고, 질서를 세우고, 서로 책임을 나눔으로써 불안에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열왕기상 4장은 솔로몬 시대의 번영을 기록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되었고, 백성들은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조공을 바쳤으며, 백성들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습니다.”
이 평안은 단순히 군대가 강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가 나라의 현실 속에서 분별력과 질서와 공동체적 책임으로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의 불안을 어떻게 평안으로 바꾸어 줍니까?
요즘은 네비게이션(길안내)이 장착되지 않은 차를 보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네비게이션에 의지하여 처음 가는길도 척척 찾아갈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운전대는 내가 잡습니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도 내가 밟고, 방향을 바꾸는 것도 내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 가는 길에서는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필요합니다.
내비게이션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파악할뿐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교통상황에 맞추어서 앞에 있는 교통체증과 사고 구간을 분석하여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운전자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도로만 보지만, 내비게이션은 전체 경로를 계산합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운전대를 잡고 살아갑니다. 선택하고, 책임지고, 땀 흘리며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앞에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지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위치뿐 아니라 목적지와 전체 여정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기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생의 내비게이션과 같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잠언 3:6
문제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운전자의 태도입니다. 안내를 켜 놓고도 자기 생각대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길은 내가 잘 알아. 이쪽이 더 빠를 거야.”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길이 막히거나 길을 잃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 자신의 욕심과 경험만을 따라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부족해서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내를 듣고도 따르지 않아서 길을 잃는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운전자가 길을 잘못 들어도 안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고 말하며 현재 위치에서 다시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줍니다.
우리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길을 벗어나고, 감정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바른길로 인도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은 기계적인 내비게이션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내비게이션은 가장 빠른 길을 알려 주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바른 길을 알려 주십니다. 때로 하나님의 길은 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우리를 생명과 의와 평안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따른다는 것은 운전대를 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내를 신뢰하면서 내가 해야 할 순종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운전대는 내가 잡지만 방향은 하나님께 묻고, 결정은 내가 하지만 기준은 말씀에서 찾으며, 행동은 내가 하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것이 지혜로운 믿음입니다.
불안은 모든 길을 내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 커집니다.
평안은 길을 다 알지는 못해도, 길을 아시는 하나님의 안내를 신뢰할 때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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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하나님의 지혜는 두려움 속에서도 바른 선택을 하게 합니다
>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 열왕기상 4:24
솔로몬의 주변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블레셋, 모압, 암몬, 아람과 같은 나라들은 언제든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전쟁만으로 국가를 유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바탕으로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를 조정하고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지혜는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힘을 언제 사용하고 언제 절제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불안하다고 즉시 행동하지 않습니다. 먼저 사실을 확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며, 결과를 생각한 후 행동합니다.
불안할 때 내리는 결정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급한 결정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결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성급함과 무기력함 사이에서 바른 길을 찾게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말씀합니다.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불안할수록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 이 문제를 없애 주십시오”라고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주님, 이 문제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지혜와 오늘 해야 할 일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현대적 예화: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한 여객기
2009년 1월 15일,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운 US항공 1549편이 뉴욕 라과디아공항을 이륙한 직후 새 떼와 충돌했습니다. 양쪽 엔진의 추력이 거의 모두 상실됐습니다. 조종사 체슬리 설렌버거는 공항으로 돌아가려다가 고도와 거리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했습니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는 새들이 두 엔진으로 들어가 추력이 거의 완전히 상실되었으며, 조종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검토한 끝에 허드슨강 착수를 결정했다고 조사했습니다. 탑승자 전원이 생존했습니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 조사 보고
그 순간 조종사가 공포에 사로잡혔다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았고, 불가능한 선택에 집착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분별하고 가장 현실적인 길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현실을 더욱 정확하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공포를 없애기 전에 공포 속에서도 바른 선택을 하게 합니다.
역사적 예화: 쿠바 미사일 위기
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면서 미국과 소련은 핵전쟁 직전까지 갔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일부 참모들과 미 합참은 미사일 기지를 공습하고 쿠바를 침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케네디는 즉각적인 공격 대신 해상 ‘봉쇄’보다 법적으로 전쟁성이 덜한 ‘검역’이라는 중간 조치를 선택했습니다. 동시에 외교적 협상을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소련은 쿠바의 공격용 미사일을 철수하고,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보장하면서 위기가 해결되었습니다.( 미 국무부 역사자료 인용)
지도자의 지혜로운 절제가 세계적인 불안을 전쟁이 아닌 협상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지혜는 상대를 무조건 이기는 능력이 아니라, 모두를 파멸시킬 선택을 피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적용
불안한 일이 생겼을 때 즉시 말하거나 결정하지 마십시오.
먼저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확인된 사실은 무엇인가?
사실이 아니라 내가 상상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선택은 무엇인가?
이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기도하고 생각한 뒤 결정하십시오. 하나님의 지혜는 두려움 속에서도 생명의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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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하나님의 지혜는 혼란 속에 질서를 세웁니다
> “그 지방 관장들은 각각 자기가 맡은 달에 솔로몬 왕과 왕의 상에 참여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먹을 것을 공급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으며”
— 열왕기상 4:27
본문에는 솔로몬 왕궁에서 하루 동안 소비되는 음식의 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운 밀가루 삼십 고르, 굵은 밀가루 육십 고르, 소와 양과 사슴과 새들이 필요했습니다. 병거의 말 외양간이 사만이었고 마병이 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이처럼 큰 조직이 유지되려면 막대한 자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27절은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유는 각 지방 관장들이 자신이 맡은 달과 직무에 따라 필요한 것을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막연한 낙관론이 아닙니다. 필요한 일을 나누고, 책임자를 세우고, 때에 맞게 준비하게 하는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많은 불안은 문제가 크기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커집니다. 머릿속에 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쌓이면 작은 일도 거대한 문제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책임을 나누면 불안은 구체적인 과제로 바뀝니다.
불안은 “어떻게 하지?”라고 묻습니다.
지혜는 “오늘 무엇부터 하지?”라고 묻습니다.
불안은 모든 문제를 혼자 짊어지려 합니다.
지혜는 책임을 나누고 서로 협력하게 합니다.
현대적 예화: 아폴로 13호의 귀환
1970년 아폴로 13호는 달로 향하던 중 산소탱크가 폭발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전력과 산소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세 우주비행사의 생명이 위험해졌습니다. 달 착륙 계획은 즉시 포기되었습니다.
우주선 안의 승무원과 지상의 관제팀은 감정적으로 우왕좌왕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유지, 전력, 항법, 통신 등 문제를 분야별로 나누고 각 팀이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NASA는 지상관제팀과 기술자들이 실시간으로 만들어 낸 비상 대처법이 승무원 귀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세 우주비행사는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NASA 아폴로 13호 기록)
거대한 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맡은 문제를 정확히 해결하고 그 결과를 하나로 모았습니다. 혼란이 질서로 바뀌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귀환의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떠맡으면 결국 지치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은사와 책임에 따라 충성하면 공동체 안에 평안이 생깁니다.
역사적 예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병원 개혁
크림전쟁 당시 스쿠타리의 영국군 병원은 환자와 부상병으로 가득했지만, 위생과 급식, 배수와 환기 체계가 매우 열악했습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환자를 위로하는 일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주방을 정비하고, 병실을 청소하며, 깨끗한 의복과 비누·식기 등을 확보했습니다. 이후 영국 정부의 위생위원회가 하수와 환기 문제를 개선했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 실린 역사 연구는 나이팅게일의 성과가 위생과 사망의 관계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조직하고 실행하는 능력에서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자료
나이팅게일은 막연히 “환자들이 불쌍하다”고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냈고, 식사·청결·배수·환기라는 구체적인 질서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도 이와 같습니다. 기도하면서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기도한 후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실천하게 합니다.
적용
우리의 불안을 종이에 적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로 나누어 보십시오.
1.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
2. 내가 오늘 해야 할 일
3. 다른 사람과 함께 해결해야 할 일
건강이 불안하다면 막연히 걱정하기보다 필요한 검사와 치료, 식사와 운동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자녀가 걱정된다면 잔소리를 반복하기보다 대화할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와 사업장의 문제가 복잡하다면 책임을 분명히 나누고 점검해야 합니다.
질서가 모든 문제를 즉시 없애 주지는 않지만, 문제에 압도되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통하여 혼란을 정돈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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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하나님의 지혜는 나만의 안전을 모두의 평안으로 넓혀 갑니다
>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 열왕기상 4:25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라는 표현은 백성들이 생명과 재산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자기 삶의 터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뜻합니다. 왕궁만 평안한 것이 아니라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이 평안히 살았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지혜는 나 혼자 살아남는 방법이 아닙니다. 나에게 맡겨진 권한과 재물과 능력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도 평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평안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게 하고, 내가 편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긴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평안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3장 17–18절은 위로부터 난 지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을 이기게 하기보다 화평하게 합니다. 상처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다루고, 책임을 묻되 회복의 길을 함께 찾게 합니다.
현대적 예화: 르완다의 가차차 공동체 재판
1994년 르완다에서는 약 100일 동안 대규모 집단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지역사회에서 다시 살아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았습니다.
르완다는 전통적인 공동체 재판 방식인 ‘가차차’를 활용했습니다. 이 제도에는 한계와 논란도 있었지만, 지역사회가 범죄 사실을 밝히고, 가해자의 고백과 책임을 다루며, 피해자가 가족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확인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유네스코는 가차차가 파괴된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의 화해를 도모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유네스코 르완다 자료
평안은 과거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직면하고, 책임을 인정하며, 다시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일인데 잊어버리라”고 말한다고 평안이 생기지 않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상처를 듣고, 용서를 구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관계의 질서를 바꿀 때 평안이 시작됩니다.
역사적 예화: 전후 유럽과 마셜 플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은 산업시설과 교통망이 파괴되고 식량과 연료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들이 패전국을 계속 억압했다면 또 다른 불안과 갈등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1948년부터 마셜 플랜을 통해 유럽의 경제 재건을 지원했습니다. 세계은행의 역사자료는 마셜 플랜이 전후 유럽의 회복과 국가 간 협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세계은행 마셜 플랜 연구
평안을 오래 유지하려면 상대방도 다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나만 배부르고 이웃이 굶주리면 그 사회의 평안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보다 함께 일어설 기반을 만드는 것이 더 지혜로운 평화가 될 수 있습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 때문에 더 평안해진 사람이 있는가?
내 말은 사람을 안심시키는가, 불안하게 만드는가?
내 권한은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가?
내 재물과 지식과 경험은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고 있는가?
내가 먼저 용서를 구하거나 화해해야 할 사람은 없는가?
가정의 평안은 가장 힘이 센 사람이 자기 뜻을 관철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 모두가 존중받고 안전하다고 느낄 때 생깁니다. 교회의 평안도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 서로의 짐을 나누고 문제를 사랑으로 해결할 때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나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도 지켜 주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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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열왕기상 4장의 평안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가 선택과 질서와 공동체적 책임으로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불안을 평안으로 바꿉니다.
첫째, 두려움 속에서도 바른 선택을 하게 합니다.
둘째, 혼란 속에 질서를 세우게 합니다.
셋째, 나만의 안전을 모두의 평안으로 넓혀 가게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의 평안도 영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면서 그의 지혜는 흔들렸고,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의 사후에 나라가 분열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지혜와 정치적 평안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는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지혜로운 말씀만 주신 분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신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 요한복음 14:27
오늘 우리의 불안을 주님께 맡깁시다. 그리고 지혜를 구합시다.
“주님, 두려움 때문에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게 하소서.
혼란 속에서 해야 할 일을 분별하게 하소서.
나에게 주신 것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도 평안하게 하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의 두려움을 분별력으로, 혼란을 질서로, 갈등을 화평으로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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