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근원을 치유하여 주소서

Young David 2026. 8. 16. 07:25



본문: 열왕기하 2장 19–22절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 열왕기하 2:21

들어가는 말씀

우리는 광복 81주년을 맞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35년간의 일제강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 후 81년 동안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경제가 성장했고, 민주주의가 발전했으며, 교육과 과학기술과 문화의 수준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발전만 보고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지식은 많아졌지만 지혜는 부족하고, 소통의 수단은 많아졌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는 약해지고 있습니다. 생명 경시, 물질만능주의, 세대와 계층의 갈등, 거짓과 혐오, 중독, 가정의 해체, 낮은 출생률과 높은 자살률 등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깊은 문제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제도 몇 가지를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겉으로 나타난 현상 아래에 더 깊은 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리고 성읍도 그러했습니다.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 열왕기하 2:19

여리고는 위치가 좋은 성읍이었습니다. 따뜻한 기후와 풍부한 햇빛을 가진 오아시스 지역이었습니다. 사람이 거주하고 농사를 짓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물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위치는 좋았지만 근원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환경은 좋아 보였지만 생명의 근원인 물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매가 제대로 맺히지 않았고 생명을 잃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겉모습은 좋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 조건도 좋고, 교육 수준도 높고, 시설도 훌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영혼의 근원이 병들면 좋은 조건이 좋은 열매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근원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를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병든 현실을 정직하게 보아야 합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 열왕기하 2:19

1. 여리고 사람들은 문제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자기 성읍의 장점과 문제점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이 성읍의 위치는 좋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쁩니다.”

그들은 무조건 자기 성읍을 비난하지도 않았고, 반대로 좋은 점만 강조하면서 문제를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좋은 것은 좋다고 인정했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병을 고치려면 먼저 어디가 아픈지를 알아야 합니다. 정확한 진단 없이 치료할 수 없습니다. 몸이 아픈데도 “나는 괜찮다”고만 하면 병은 더 깊어집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는데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덮어두면 관계는 더욱 악화됩니다. 신앙이 메말라 있는데도 과거의 경력과 직분만 자랑하면 영혼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죄를 죄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고, 상처를 상처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치유를 구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드러났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 시편 51:3

다윗의 회복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탕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에서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스스로 돌이켜”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 누가복음 15:18

자신의 현실을 바로 본 사람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2. 좋은 위치가 건강한 생명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여리고는 위치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빴습니다.

겉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집에 산다고 가정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재산을 가졌다고 마음이 평안한 것도 아닙니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인격이 성숙한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영혼이 반드시 건강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 마태복음 23:27

주님은 겉모습보다 그 안을 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경력과 재산과 지위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의 근원을 살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보다 하나님 앞에서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3. 우리 사회의 병든 현실도 정직하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81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발전의 밝은 면만 보면서 그 이면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음과 같은 영적 질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생명보다 돈과 성공을 우선하는 물질만능주의
  • 사실보다 진영과 감정을 앞세우는 거짓과 왜곡
  •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원수처럼 대하는 혐오와 분열
  • 책임보다 권리를 앞세우는 극단적 개인주의
  • 쾌락과 자극을 좇는 각종 중독
  • 부모와 자녀, 부부와 세대 사이의 관계 단절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태도
  • 하나님 없이도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영적 교만

그러나 이것을 단지 “세상이 악하다”고 정죄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나는 정직한가? 나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가? 나는 돈과 성공보다 하나님을 우선하는가? 나는 내 편이 아닌 사람도 사랑하는가? 나는 가정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고 있는가?”

사회는 결국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의 병을 말하면서 자신의 죄와 책임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치유는 병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내 삶의 물은 어떠합니까?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내 안에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병든 근원이 있지는 않습니까?”


둘째, 겉이 아니라 근원을 치유해야 합니다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 열왕기하 2:21

1. 엘리사는 물이 흘러간 곳이 아니라 근원으로 갔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의 말을 들은 엘리사는 물을 떠다가 겉만 정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물이 흘러가는 수로를 고치는 데 그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물 근원으로” 나아갔습니다.

물을 고치려면 물이 시작되는 곳을 고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류의 더러운 물을 계속 퍼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상류에서 오염된 물이 계속 흘러오면 아무리 퍼내도 다시 더러워집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나타난 증상만 없애려고 합니다.

관계가 나빠지면 상대방의 말투만 문제 삼습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행동만 통제하려 합니다. 분노가 일어나면 화를 낸 사건만 후회합니다. 반복되는 죄가 있으면 들키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을 만들어 내는 마음의 근원은 살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더러워지는 근원이 외부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마가복음 7:21–23

문제의 근원은 마음입니다.

거짓말의 근원에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두려움이나 욕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노의 근원에는 교만과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미움의 근원에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탐욕의 근원에는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하는 불신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동만 억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2. 성경이 말하는 근본 문제는 죄입니다

여리고는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된 성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여리고 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다시 세우는 자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 여호수아 6:26

그 후 아합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면서 여호수아를 통해 주어진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왕상 16:34).

따라서 여리고의 문제는 단순한 자연환경의 문제만으로 읽기 어렵습니다. 이곳에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하여 그 성읍의 물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심판의 자리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이 임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주의 흔적이 남아 있던 곳에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도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며,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병들게 합니다. 제도와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인간의 탐욕과 교만과 미움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법을 만들어도 사람이 법을 악용할 수 있습니다. 좋은 제도를 세워도 운영하는 사람이 부패하면 제도는 왜곡됩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져도 마음의 욕망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지식을 악한 목적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잠언 4:23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3. 개인과 가정과 사회의 근원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부가 계속 다툰다면 단순히 말다툼의 기술만 고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이기심, 무시, 불신과 오래된 상처를 살펴야 합니다.

자녀가 방황한다면 행동만 억압하기보다 그 마음속의 외로움, 두려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가 갈등한다면 회의 절차만 바꾸기보다 교만, 기득권, 시기와 자기중심성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회에 부패가 만연한다면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함께 정직과 책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양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광복은 외부의 사슬에서 풀려난 역사적 해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에게 또 다른 해방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죄와 탐욕과 미움과 거짓의 사슬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요한복음 8:32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 요한복음 8:36

정치적·민족적 자유가 소중하지만, 그것만으로 인간이 완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죄로부터의 자유, 미움으로부터의 자유, 탐욕과 중독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복음이 주는 참된 해방입니다.


셋째, 근원의 치유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 열왕기하 2:21

1. 소금 자체가 물을 고친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물 근원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소금 자체가 여리고의 물을 고친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소금을 물에 넣는다고 오염된 샘이 영구적으로 정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양의 소금은 농작물과 식수에 해를 줄 수 있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소금의 자연적인 효능이 아닙니다. 소금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표징이었고,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것을 사용했습니다.

엘리사는 “이 소금이 물을 고쳤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물을 고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종이었을 뿐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었지만 홍해를 가르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갔지만 물을 멈추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떡을 나누었지만 오천 명을 먹이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도구를 사용하시지만 능력의 근원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겉만 고치지 않고 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사람은 자신의 결심과 노력만으로 마음의 근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잠시 행동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마음의 본성을 새롭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 에스겔 36:26

하나님은 낡은 마음을 조금 수리하는 데 그치지 않으십니다. 새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을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도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며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과거의 상처가 우리 인생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시고, 반복되는 죄의 습관을 끊을 힘을 주시며, 미워하던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의 치유는 자기암시나 긍정적인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용서와 부활의 생명,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3. 하나님께서 고치시면 죽음의 자리에 열매가 맺힙니다

본문 22절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하나님의 치유는 일시적이지 않았습니다. 잠깐 물이 맑아졌다가 다시 나빠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근원을 고치시자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21절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 결과를 약속하십니다.

“다시는 죽음이 없을 것이다.”
“다시는 열매 맺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치유는 단지 나쁜 것을 제거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생명을 회복시키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고치시면 미움이 사랑으로 바뀝니다. 교만이 겸손으로 바뀝니다. 불평이 감사로 바뀝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바뀝니다. 무책임이 충성으로 바뀝니다. 죽이는 말이 살리는 말로 바뀝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 갈라디아서 5:22–23

우리나라의 미래는 경제 규모와 군사력과 과학기술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가가 더 중요합니다.

정직한 사람이 많아지고,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이 많아지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자신의 권리만큼 책임을 다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치유의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사용하여 여리고의 물을 고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병든 영혼과 가정과 사회를 치유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1. 우리는 새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엘리사는 “새 그릇”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직접적인 중심은 하나님께서 새 그릇과 소금을 표징으로 사용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다만 신앙적으로 적용한다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으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 디모데후서 2:21

다른 사람을 고치겠다고 나서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사회를 향해 회개를 외치기 전에 교회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정직을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정직해야 합니다. 세상의 분열을 비판하기 전에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2.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마태복음 5:13

소금은 부패를 막고 맛을 내며 생명을 유지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부패를 막고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일터에서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거짓이 유익을 가져다주더라도 정직을 선택해야 합니다. 모두가 책임을 피할 때 책임을 져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미워해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합니다. 약한 사람의 편에 서고,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며, 갈라진 관계를 화해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소금이 소금통 안에만 있으면 음식의 부패를 막을 수 없습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엘리사가 소금을 물 근원에 던졌듯이 그리스도인은 병든 현실 속으로 들어가 복음의 생명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근원을 치유하는 힘은 인간의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가 특정 진영의 편에 서는 것만으로 사회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진영의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야 합니다.

정의는 말하되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죄는 죄라고 말하되 죄인을 정죄하고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를 지키되 겸손해야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되 하나님 나라보다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 디모데전서 2:2

정치적 견해가 같아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지도자들이 공의와 지혜로 나라를 섬기며, 국민이 평안한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근원을 치유하여 주소서

오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봅시다.

혹시 우리의 삶이 여리고와 같지 않습니까?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다.”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사랑과 기쁨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까? 과거의 상처가 지금의 관계를 계속 오염시키고 있습니까? 반복되는 죄와 습관 때문에 영적으로 메말라 있습니까?

증상만 가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물 근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왜 끊임없이 인정받으려 하는지, 왜 물질을 놓지 못하는지, 왜 용서하지 못하는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근원을 주님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주님, 제 마음의 근원을 고쳐 주십시오.
주님, 우리 가정의 근원을 고쳐 주십시오.
주님, 우리 교회의 근원을 고쳐 주십시오.
주님, 우리 사회와 나라의 근원을 고쳐 주십시오.”

광복 81주년을 맞아 우리는 외적인 해방만 기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와 미움, 탐욕과 거짓, 분열과 중독의 사슬에서 풀려나는 영적 해방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근원을 고치시면 죽음의 물이 생명의 물로 바뀝니다. 열매 맺지 못하던 땅이 다시 열매를 맺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되고,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하게 되며, 절망하던 사람이 소망을 전하게 됩니다.


맺는말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 병든 현실을 정직하게 보아야 합니다.
좋은 위치와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영혼의 질병을 발견해야 합니다.

둘째, 겉이 아니라 근원을 치유해야 합니다.
모든 죄와 갈등과 병리 현상의 깊은 곳에 있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셋째, 근원의 치유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소금이나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생명의 근원을 회복시킵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사회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깨닫게 하소서.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소서. 우리의 병든 마음과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소서. 성령으로 우리 속에 새 마음을 주시고, 우리를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살리는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소서.”

여리고의 물을 고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고치시고, 우리 가정을 고치시며, 우리 교회와 나라의 근원을 치유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나눔과 적용

  1.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내 삶에서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나쁜 물’은 무엇입니까?
  2. 사람들의 영혼이 병들었을 때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3. 나는 문제의 증상만 고치려 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마음의 근원을 내어드렸습니까?
  4. 하나님께서 병든 영혼을 치유하시는 일에 쓰임 받기 위해 내가 회개하고 힘써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5. 이번 주에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세상의 소금’으로 실천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