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하나님의 섭리 : 상처가 사명이 되는 순간(요셉의 이야기)

Young David 2026. 8. 26. 07:32



하나님의 섭리: 상처가 사명이 되는 순간

본문: 창세기 45장 1–5절

창세기 45장 요셉 이야기

 

들어가는 말씀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납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것을 허락하셨습니까?”

“나는 정직하게 살려고 했는데 왜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합니까?”

고난을 당하는 순간에는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상처와 손해와 억울함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보면,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성실하게 일했지만, 보디발 아내의 거짓말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지만 그는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의 삶에는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자신을 팔았던 형들을 다시 만납니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형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요셉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요셉이 마음만 먹으면 형들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그대로 돌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복수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합니다.

 


>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형들은 “우리가 요셉을 팔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보내셨다”고 고백합니다.

형들의 행동이 옳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형들의 죄는 분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악한 행동조차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모든 사건 자체가 선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악은 악이고, 상처는 실제 상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과 고난 가운데서도 일하시며, 마침내 그것을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 사용하십니다.

오늘 요셉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의 세 가지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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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하나님의 섭리는 이해되지 않는 길에서도 진행됩니다

요셉의 인생은 처음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 요셉에게 가족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받은 다음 요셉에게 찾아온 것은 영광이 아니라 구덩이였습니다. 총리의 자리가 아니라 노예의 자리였습니다. 왕궁이 아니라 감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요셉의 현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갈 때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갈 때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일하고 계셨습니다.

구덩이는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은 애굽의 행정과 문화를 배우는 훈련장이 되었습니다. 감옥은 바로의 관원들을 만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관원장의 망각까지도 결국 바로의 꿈을 해석해야 할 정확한 때에 요셉을 불러내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요셉이 지나온 각각의 사건은 따로 보면 실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연결하면 하나의 길이 됩니다.

 

예화: 모세의 미디안 40년

모세도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돕고자 했지만,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으로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이후 40년 동안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왕궁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으니 실패한 인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바로 그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양 떼를 이끌었던 광야는 훗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야 할 길이었습니다. 왕궁에서 배운 지식도 필요했지만, 광야에서 배운 인내와 겸손도 필요했습니다. 모세가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미디안 40년은 출애굽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미디안과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은 시간,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은 시간,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것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씨앗이 땅속에 묻혀 있을 때에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가 내리고 있습니다. 요셉의 감옥과 모세의 광야도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해되지 않는 길을 지나고 있습니까?

당장 모든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이해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 하나님의 섭리는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중단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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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하나님의 섭리는 고난을 생명을 살리는 사명으로 바꿉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사건 너머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창세기 45장 5절에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먼저 보내셨다고 고백합니다.

요셉이 애굽에 온 목적은 단지 자신이 성공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요셉 한 사람이 높은 지위를 얻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하여 굶주리는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야곱의 가족을 보존하며, 언약의 계보를 이어가고자 하셨습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은 개인적인 성공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사명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흉년이 오기 전 7년의 풍년 동안 곡식을 저장했습니다. 흉년이 시작되었을 때 애굽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사람들도 양식을 구하러 왔습니다. 요셉이 관리한 곡식은 수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높이신 것은 요셉 혼자 편안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위와 지혜와 권한을 주신 것은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맡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는 것은 필요한 사람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식과 경험을 주시는 것은 그것으로 사람을 살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난을 통과하게 하신 것은 같은 고난을 겪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화: 에스더가 왕비가 된 이유

에스더는 포로 민족 출신의 고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이 유다 민족을 몰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에스더는 침묵하면 자신도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 4장 14절 요지



에스더가 왕비가 된 것은 자신의 안락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민족을 살리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자신의 지위에만 집착했다면 왕비는 되었어도 사명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결단하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의 용기를 사용하여 유다 민족을 살리셨습니다.

요셉에게는 애굽 총리의 자리가, 에스더에게는 왕비의 자리가 주어졌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 자리를 자기 성공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사명으로 사용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경험이 있습니까? 그것으로 사람을 도우십시오.
물질이 있습니까? 필요한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하십시오.
직분이 있습니까?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로 사용하십시오.
고난을 통과했습니까? 같은 고난 속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우리는 “왜 이런 일을 당했습니까?”라는 질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 경험을 통하여 누구를 살리기를 원하십니까?”

>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상처를 사명으로 바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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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복수보다 용서를 선택합니다

요셉은 자신을 팔았던 형들을 마음껏 벌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형들은 요셉 앞에서 아무런 힘도 없었습니다. 요셉이 죄를 묻는다면 변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라고 위로합니다.

이 장면에서 요셉은 형들의 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죄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용서란 잘못을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해자에게 무조건 다시 자신을 맡기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심판과 복수의 권리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사람의 죄가 내 남은 인생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형들만 바라보면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자 복수의 자리에 긍휼이 들어왔습니다.

섭리를 믿지 못하면 우리는 과거의 피해자로만 살아갑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섭리를 믿는 사람은 다르게 고백합니다.

“사람은 나를 넘어뜨리려 했지만 하나님은 나를 붙드셨습니다. 사람의 잘못이 하나님의 계획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예화: 다윗이 사울을 살려 준 사건

사울은 아무 이유 없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충성했지만, 사울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다윗을 계속 추격했습니다.

사무엘상 24장에서 다윗은 굴 안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다윗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울의 옷자락만 잘랐는데도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사무엘상 24장 12절 요지



다윗은 사울의 행동이 옳다고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직접 복수하지 않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결론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하나님께서 갚으시며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첨부하신 자료에서 말하는 긍휼도 이 지점과 연결됩니다. 긍휼은 상대방의 잘못을 모른 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함께 서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그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상처 준 사람을 당장 신뢰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관계 회복에는 진실한 회개와 안전한 경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계속 복수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죄보다 하나님의 섭리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 섭리를 믿는 사람은 과거의 상처에 붙잡히지 않고,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며 미래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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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말

요셉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 사람은 요셉을 팔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제거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준비시키셨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감옥에 넣었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왕의 관원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정확한 때에 요셉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흉년은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생명의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죄를 선이라고 부르는 교리가 아닙니다. 인간의 악과 실패와 고난조차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는 아직 해석되지 않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고난도 있고, 해결되지 않은 관계도 있으며, 응답받지 못한 기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인생의 한 장면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고백합시다.

“하나님,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을 신뢰합니다.”

“제가 당한 상처가 다른 생명을 살리는 사명이 되게 하소서.”

“상처를 준 사람에게 매여 살지 않고 판단을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언젠가 우리도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요셉처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가셔서 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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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지 핵심 정리

1. 하나님의 섭리는 이해되지 않는 길에서도 진행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중단된 것은 아닙니다.


2. 하나님의 섭리는 고난을 생명을 살리는 사명으로 바꿉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와 경험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3.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복수보다 용서를 선택합니다.
사람의 잘못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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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드리는 기도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고난 중에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의 상처와 실패를 생명을 살리는 사명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우리를 아프게 한 사람에게 붙잡혀 복수와 원망 속에 살아가지 않게 하시며,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긍휼과 용서를 선택하게 하옵소서.

요셉과 같이 “하나님께서 먼저 보내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